아케데미아 think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사람치고 교수에 대한 꿈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비록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대놓고 꺼내지는 못하지만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교수가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 정도는 누구든지 한다. 실제로 박사학위가 교수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기도 하고-

나 역시 대학원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그와 같은 청운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무조건 교수가 될거야" 까지는 아니지만 "박사학위 잘 따고 교수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 하는 정도? 내가 하고 싶어하는 연구를 하면서 내가 가진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또한 요새같이 50대에 명퇴하는 세상에 죽을때까지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었고 그 생각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다.

여하튼 세월은 흘렀고 지난달을 기점으로 디펜스를 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대학원을 시작할때 품었던 꿈이 무색(?)하게 나는 현재 회로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 포지션 (인더스트리)을 유지할 생각이다.

인더스트리로 가야할지 아카데미아로 가야할지 졸업하기 전부터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지만 결국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더스트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1. 논문실적

교수를 하고 싶다면 당연히 논문실적이 중요하다. 쓴 논문의 갯수도 중요하지만 1저자 논문이 몇개나 되는지도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교수를 하고 싶다면 하나 더 추가가 되는데 바로 저널 논문만 인정해 준다는 점이다.

논문은 크게 컨퍼런스냐 저널이냐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컨퍼런스는 말 그대로 학회 발표 논문이고 저널은 학회지 논문이다. 학회발표논문은 최신 연구결과를 신속하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detail하지 않고 저널은 detail하긴 하지만 최신 결과가 아닌 최소한 1-2년 정도 된 예전 결과라는 단점이 있다 (리뷰 프로세스만 최소 6개월..)

옛날에는 학회에 논문을 내기만 하면 누구든지 발표가 가능했다고 하더라. 그에 비해 저널은 peer-review라고 해서 리뷰어 여러명이 리뷰를 하기에 상대적으로 꼼꼼한 검토가 가능했고..한국에서 컨퍼런스 논문을 인정해주지 않고 저널 논문만 인정해주는 데에는 그러한 역사도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요새같은 시대에는 학회에 발표하기 위해서 당연히 리뷰 프로세스를 거치고 제출된 논문중 꽤나 많은 양이 reject을 먹는다. 또 정반대로 요새 같은 시대에는 저널도 저널나름이라 빡센 저널도 있지만 왠만한 내용으로 제출되기만 하면 바로 accept 받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SCI논문이어도! 심지어 impact factor가 중간 이상이어도). 그러다보니 미국만 하더라도 한국과 달리 컨퍼런스 논문도 인정해준다.

자 이제 내 경우로 돌아가면, 내가 대학원 과정에서 1저자로 쓴 논문이 XX개 정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이 컨퍼런스 논문이라는 점.. (이부분은 지도교수 성향에 의해 갈라지기 때문에 학생으로서 할수 있는 게 없다). 내 논문 실적이 이러하다보니 한국에 교수직을 지원하려고 한다면 내가 개고생해서 쓴 논문들이 대부분 휴지조각이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100% 인정은 바라지도 않으니 한 50%만 인정해줘도 할만한 경쟁이 될터인데 컨퍼런스 논문 자체를 인정안해주니 3/4저자로 저널을 쓴 사람보다 내 실적이 낮게 된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장황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꽤나 많은 박사 졸업생들이 겪는 문제이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박사후연구원(포스닥)을 하면 된다. 내가 만든 연구결과가 어디 도망가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포닥을 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저널로 conversion하면 된다.

2. 포닥의 가성비

그래서 포닥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박사 학위를 따자마자 교수직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최소한 포닥을 몇년은 해야한다. 그러면 과연 포닥을 몇년을 해야 내가 원하는 교수직을 잡을 수 있을까?

실제로 내가 디펜스를 마쳤을 때 지도교수님께서 나에게 포닥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4년 정도만 포닥을 하면 너가 원하는 교수를 할 수 있을거라고..

아 근데 정말.. 이 놈의 박사하느라 몇년이 걸렸는데 또 포닥을 4년을 더 하라니.. 4년을 더하면 내 나이가 3X인데...40대가 아니란 것에 감사해야하나?;;; 그러면 대학원에서 도대체 몇년을 보내는 거냐...;; 군대를 한 6-7번을 더 다녀올듯..

순전히 나이와 대학원에서 보내야 할 시간 때문에 주저한 것은 아니다. 솔까말 내가 만일 싱글이고 부양할 가족이 없었다면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 포닥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디펜스를 할 시점 이미 나에겐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 첫째가 디펜스 2달전에 태어났고, 지금엔 둘째도 있다. 

4년을 더 포닥을 한다면 매일같이 아침일찍 출근해 밤늦게 돌아오는 삶의 연속일텐데 과연 교수라는 직업이 내가 자식들 얼굴을 덜 봐도 될만큼 중요한 것인가?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몰라도 될만큼 나는 교수를 하고 싶어하는 건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 욕심을 좀 버리고 아기들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가지는 것이 조금더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지도교수의 제안을 거절할 때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싱글이었다면 아마 포닥을 했겠지만 아이까지 키우려니 엄두가 안난다고..지도교수도 쿨하게 인정하더라.

그리고 포닥 월급 받으며 4인 가족을 건사할 생각을 하니 답도 안나오고 (뒤늦게 안 일이지만 미국포닥월급이 한국 초임 교수 평균 월급 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더라;;)

3. 교수의 가성비

만일 내가 포닥을 열심히 해서 나이 마흔이 다 되었을때 한국에서 교수직을 잡았다고 가정해보자. 꿈에 그리던 교수가 되어 기뻐하는 나, 월급날이 되었을 때 깜짝 놀라게 된다. 이것은 뭐 말도 안되는 박봉이기 때문..아니 내가 학부때 보던 교수님들은 엄청 차려입고 다녔었는데 이런 월급을 받으면서 다녔던거야?;;

내가 차마 여기에서 초임교수 평균연봉을 적을수는 없지만..4인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면 택도 없는 월급이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 살거나 아니면 아이가 없다면야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월급이긴하지만 아이가 둘이라면 와이프도 무조건 맞벌이해야할 판..

그리고 주 52시간이라는데 교수는 그런것도 없고..수업마치면 채점해야하고 채점끝나면 논문써야하고 또 비는 시간에 연구비 따러 제안서 써야하고... 학부때 수많은 교수님들이 맨날 밤 11시 넘어서 퇴근한다고 불평을 하던것이 이해가 되더라.. 말그대로 빛좋은 개살구

아 물론,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결혼을 해도 키울 자식이 없다면 충분히 지장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 시절에도 자정넘어야 퇴근하는 삶을 몇년을 했으니...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

또한 교수 직종이 비록 초봉은 약하지만 호봉제이고 짤릴 위험도 거의 없기 때문에 계속 버티다보면 월급이 저절로 많아진다. 또한 60넘어서 은퇴하면 국민연금과 비교할수 없는 사학연금까지도 나오니 노후걱정도 끝.. 결국 인생의 뒷자락에서 보면 교수라는 직업이 돈을 못버는 직업은 아닌데, 솔직히 들인 노력에 비해 초봉이 너무 낮다는 것..

그러면 미국 교수는 어떨까? 다행히 미국 교수는 초봉이 쎄다. 한국의 2배는 되는듯.. 하지만 문제는 5년뒤에 있을 테뉴어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첫 몇년은 집에도 못가고 밤새는 삶을 계속해야한다는 점. 게다가 제안서도 영어로 써서 미국인들의 돈을 따와야해- 그렇게 테뉴어를 겨우 따면 내 나이 마흔중반이 되었을테고..아기들은 10살이 다 되어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아빠랑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을 듯..  과연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일까?;;





결국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든 교수의 꿈을 일단 접고 회사에 취업을 했다. 긴 내용을 적었지만 어찌보면 내가 능력이 안된다는 것에 대한 변명 혹은 자기합리화 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포닥을 하고 교수를 꿈꾸는 분들 역시 너무 많이 계시기 때문에..

하지만 어찌되었건간에, 나는 내 캐리어를 인더스트리로 잡으면서 아기들과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커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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