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집사기 - #4 (Inspection & Appraisal) story

지난 글 - #1

지번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오퍼가 되고 나서 기쁨도 잠시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해야할 일이 산더미 처럼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번 정리해보자면 

-토요일: 집주인이 내 오퍼 수락
-일요일: 인스펙터 연락해서 예약잡기
-월요일: 디파짓 수표($1000) 보내기, 부동산 변호사 연락하기, 모기지 은행 연락하기
-화요일: 인스펙션 참석 
-수요일: 부동산 변호사 확정
-목요일: 모기지 쇼핑 시작
-and on and on~

처음 1주일동안은 각종 서류를 준비하느라 일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인터넷 검색하고 내 서류 스캔하고 팩스붙이고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찌나 모르는 단어들이 많은지..그것 검색하고 옵션들 비교하고... 게다가 법에 쓰이는 영어는 어쩜 그렇게 처음 보는 단어들 투성이인지..와이프랑 아기가 한국 방문 중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둘이서 함께 준비했다면 100% 싸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때 내가 검색하고 준비했던 각종 사항들을 여기에 적는 것도 좋겠으나,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는 내용도 아니고 나 역시 100% 확실하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그 수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부분에 대해서 한번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원래 주인하고 이 집을 얼마에 사겠다고 합의를 했을지라도, 여전히 나에겐 집 값을 깎을 기회, 혹은 이 계약을 취소해버릴 권한이 남아있다. 바로 1) Inspection (집 검사) 그리고 2) Appraisal (집 감정) 이다. 이 두가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서로 네고가 잘 되지 않을 경우 나는 위약금 한푼도 안내고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이래서 미국에서 집을 파는 것이 집을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듯;;;)

우선 집 검사 (Inspection)이란 제 3의 집검사하는 사람이 내가 사려는 집에 방문해서 이 집이 멀쩡한 집인지, 물이 새지는 않는지, 고쳐야 할 부분은 없는지 일일이 꼼꼼하게 체크해본다. 40평 짜리 집인 경우에도 거의 2시간 남짓 걸린다.

(실제로 내가 받은 Inspection report)

그래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하나하나씩 다 지적을 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집 주인에게 이것을 고쳐달라고 청구하거나,  원래 가격에서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일러가 너무 낡았으니 교체해야한다는 평가가 뜨면 나는 주인에게 이걸 고쳐달라고 하던지 혹은 보일러 가격만큼 집 가격에서 깎아달라고 말할수 있다. 만일 주인이 싫다고 하면? 나는 그냥 계약을 파기하면 된다. 위약금 한푼도 낼 필요가 없다. 이것을 Inspection contingency라고 부른다.

아파트가 대부분인 한국에서는 굳이 필요가 업을 것 같지만 단독주택을 사는 경우에는 나름 유용할 듯 싶다. 집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일반인은 알 수가 없고, 집 주인이 그것을 속여서 팔 수도 있으니까-

두번째는 집 감정(Appraisal)이다. 이 것은 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모기지 은행에서 감정평가사를 보내서 확인한다. 이 감정평가사는 집에 방문해서 이 집 넓이는 얼마인지, 화장실은 몇개나 있는지, 방은 몇개나 있는지, 주변 동네는 어떠한지, 주변 집 시세 (최근 6개월)은 어떠한지 그러한 부분을 다 체크하고 이 집의 적정 가격을 결정한다.

(구글에서 appraisal report로 검색하면 나오는 샘플 리포트)

10억 짜리 집을 사려고 하는데 나는 그 10억을 모기지 은행에서 전부 빌리려고 한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다운페이가 0이니실제로는 불가능). 그런데 감정평가사가 평가해보더니 이 집 가격은 8억이 적당해라고 평가를 내린다면? 그러면 은행은 나에게 8억만 빌려주고, 나머지 2억은 내 돈에서 내거나 아니면 집 주인하고 네고를 해서 집 가격을 감정가(8억)로 낮춰야한다.

만일 집주인이 네고 안해준다고 2억은 내 돈으로 내겠다고 버틴다면? 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위약금 한푼도 안내고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 또한 이렇게 계약이 파기된 경우 감정된 가격(8억)이 1-2달 정도 공개되기 때문에 집주인은 손해일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집 주인은 울며겨자먹기로 집 값을 깎아줄수 밖에 없다. 이것을 Appraisal contingency라고 부른다.

솔직히 이 제도는 지금 당장 시행하기엔 어렵겠지만, 한번 한국에도 도입해볼만 할듯 싶다. 집 값이 너무 올라서 난리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집 주인들끼리 집 값을 담합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감정평가를 의무로 채택하면 집 값 오르는 속도가 조금더 완만해지지 않을까?

이 두가지 제도(Inspection & Appraisal)는 순전히 집을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집을 사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제도를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셈이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지만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역사는 또 가장 긴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짬밥은 무시못한다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각종 보완하는 제도들을 촘촘히 만들어 온 것-

이러한 제도들이 법적으로 의무화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의무화 하지 않아도 대부분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 값이 급격하게 오르는 경우 이러한 제도들이 유명무실되거나 오히려 정반대로 집사는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집 주인인데 내 집을 사려는 사람이 100명이 있어- 그러면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집 사는 사람들이 인스펙션을 안하겠다고 하거나, 감정가가 낮게 나와도 내 돈 들여서 차액을 매꾼다고 하거나, 최악의 경우 현금을 왕창 가져와서 현금박치기로 집을 사겠다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나 최근 집 값이 수직상승한 캘리포니아에서는 Appraisal이 너무 낮게 나와서 울며겨자먹기로 돈을 더 내거나, 집 사는 것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속출한다고;;;  무슨 제도를 만들어도 자유경쟁을 이길 수 없구나! 이 더러운 자본주의!

  


덧글

  • 서산돼지 2018/12/19 11:34 # 답글

    미국에서 중계업자가 받는 수수료가 우리나라보다 열배 가까이 되어서 많이 놀란 적이 있는데, 저런 과정을 거치려면 중계업소도 업무량이 만만치 않겠군요. 이사자주 못다닐 것 같습니다.
  • 에타 2018/12/19 11:46 #

    그렇죠. 제가 미처 설명을 못했는데 중계업자는 수수료를 집을 판 사람으로부터 받습니다. 집값의 6% 정도 받아서 집 주인 중계업자 그리고 집 사는 사람 중계업자가 나눠먹는다고 하죠. 그러니까 미국에서 집을 파는 것은 보통일이 아닐것 같아요. 일단 어느정도 올라야 집을 팔지 바로 팔아버리면 손해니까요 ㅠ
  • 1234 2018/12/19 15:22 # 삭제 답글

    한국이야 대단지 아파트가 많아서 집값이 쉽게 책정이 되니까요. 부동산이라고 하지만 공산품이나 다를바 없죠.
    미국이라면 중계업자 역량에 따라 9억 받을 집을 8억받을수도 10억받을 수도 있으니..수수료가 비싸도 아까울게 없을것 같아요.
  • 에타 2018/12/19 15:39 #

    아 중계업자의 역량에 따라 9억 받을 집이 10억에 팔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일단 그렇게 선계약이 체결되어도 나중에 감정평가에서 엎어져요. 물론 시장이 급상승세면 경쟁자들이 워낙 많아서 가능합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중계업자 역량하고는 관계가 없죠
  • 함부르거 2018/12/19 16:33 # 답글

    한국에도 감정평가제도가 있고 감정평가사도 있습니다만 사인간의 거래에서 이용되는 일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주로 공공사업 보상할 때 많이 이용하지요.

    미국의 제도는 거래비용이 높아져서 매매를 제한하는 효과도 있지만 시장 안정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 에타 2018/12/19 23:14 #

    네 그렇죠. 솔직히 말해서 일반 개인간의 거래에 까지 감정평가사를 도입하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긴 해요. 일단 제반비용도 더 들어가고 시간도 훨씬 오래걸리죠. 빨리빨리를 선호하시는 분들께는 악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은 어찌되었건 이렇게 안전장치를 많이 걸어 놓았기에 그만큼 부동산 사기가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는 것 같아요. 한국 부동산 거래를 들어보면 너무 간단해서 사기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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